요즘, 마포의료생협은

[시사IN] 의료생협 가 보니 …“우리는 의사랑 수다떤다”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6월6일 현충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동교동삼거리 인근에 있는 한 회사 회의실. 동네 주민 18명이 모였다. 지역 생협 관계자, 가정의학과 수련의, 한의사, 치과의사, 환경운동가, 마포상인연합회 회장 등 직업이 다양했다. 가칭 마포의료생협을 준비하는 이들이다. 이날 모임은 6월16일에 있을 창립총회를 앞두고, 이사 후보자들이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의료생협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진행을 맡은 김종희씨(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나에게 의료생협은 무엇인가’를 A4 용지에 쓰도록 했다. 박종석 마포구상인연합회장은 ‘돈 아닌 와글와글’이라고 썼다. 그는 “상인들은 시간과 돈 때문에 몸이 안 좋아도 병원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도 와글와글 모일 수 있는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건축 일을 하는 박정은씨는 ‘말이 통하는 친구’라고 썼다. 박씨는 마포로 이사를 오면서 의료생협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원주의료생협에 워크숍을 갔다 오면서,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정경섭 마포 민중의집 대표는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하는 식당 아주머니, 비정규직 등 의료 혜택이 필요한 분들이 참여해 이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으면 하는 게 내 꿈이다”라고 말했다.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김종희씨는 “나중에 어떤 의료기관에서 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의료생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생협에 대해 ‘설레면서도 갑갑한 직장’이라고 썼다. 스스로 신명이 나서 일할 수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개인병원으로 개원했을 때와는 달리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조금 갑갑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안산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새안산의원(위). 조합원이 5300여 가구에 이른다

조금씩 결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해 보였다. 의료인과 환자의 신뢰, 병원을 통한 지역 주민의 소통, 믿을 수 있는 병원에 대한 기대였다. 이들은 그 해법을 의료생협에서 찾고 싶어했다.

조만간 창립총회를 앞둔 마포의료생협은 마을 공동체인 성미산마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009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민중의집’과 같은 지역 단체와 마포상인연합회 등 지역 상인회가 결합하면서 탄력을 얻었다. 현재 서울 마포처럼 전국적으로 의료생협을 추진하는 곳은 부천, 인천, 군포, 수원, 구리, 대구, 순천, 부산, 익산, 광주 등 10군데가 넘는다. 서울에서는 은평구에서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이 지난 2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최봉섭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상임이사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의료에 대한 지역사회의 필요와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민참여형 의료생협 설립이 늘어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가족 주치의 표방, ‘6분 진료’ 원칙

의료생협은 조합원들이 출자해 병원을 운영한다. 조합원들이 병원의 주인이 되어 의료진을 고용하는 방식이다. 300명 이상 조합원이 출자금을 3000만원 이상 모으면 병원을 설립하는 게 가능하다. 지역에 개인병원도 많은데 왜 굳이 의료생협을 결성해 병원을 만들려는 것일까. 이는 마포의료생협이 견학했다는 원주의료생협 등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주의료생협은 올해 5월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의원 한 곳과 한의원 한 곳을 운영하고 있다. 초창기 530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했는데, 지난 4월 기준 조합원이 2330가구에 이른다. 의료생협은 조합 활동이 활성화하는 분기점을 대략 2000가구로 잡는다고 한다. 원주의료생협도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원주에 의료생협이 생겨난 데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원주는 한국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린다. 1960년대 중반부터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 등이 협동조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때부터 신협과 소비자생협운동이 시작되었다. 2000년대 들어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살림운동, 소비자생협 등이 활성화되었고, 원주는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가 강한 곳이 되었다.

이런 원주에서 의료생협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였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새로운 병원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원주밝음신협 등 여러 협동조합이 기관 출자를 하고 조합원들이 개인 출자를 해 의료생협을 만들게 되었다.

원주의료생협이 운영하는 단구동 ‘우리동네의원’을 찾았다. 단구동은 반경 500m 내에 70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 밀집 지역. 우리동네의원 벽에는 환자의 알 권리, 자기 결정권, 배울 권리, 진료받을 권리 등을 담은 ‘환자권리장전’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 병원은 ‘6분 진료’를 원칙으로 한다. ‘우리 가족 주치의, 우리 동네 주치의’를 표방하고 있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이용할 수 있다.

평일 낮시간, 진료를 기다리는 이가 대여섯 명 있었다. 한 환자의 동의를 얻어 진료실에 함께 들어갔다. 혈압을 재고 의사가 묻는다. “그래서 담배는 끊으셨어요?” “아직 못 끊었어요. 이상하게 병원에만 오면 혈압이 높게 나오네요(웃음).” 의사와 이 환자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듯했다. 변상훈 원주의료생협 사무국장은 “조합원 가운데 당뇨, 고혈압 환자 같은 만성환자들 중에는 ‘처음에 보았을 때 6분 얘기하고, 다음에는 처방전만 끊어줄 줄 알았는데, 왜 나 붙들고 그렇게 오래 얘기하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도 의사와 지역 주민대표, 이사장, 사무국장이 병원 운영비를 감안하고 협의해 진료비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는 한 소아 예방주사의 경우 다른 병원보다 5만~6만원 싼 액수로 책정했다. 지역의 육아 사이트에 ‘항생제도 적게 쓰고, 비용도 저렴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춘천에서 이 병원을 찾는 이도 있다고 한다(실제로 2011년 5월 가정의학회에서 서울대 가정의학과 추혜인 전공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상반기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항생제 처방률은 5.9~20.5%로 당시 전국 의원급 평균인 53.2%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다).

원주의료생협이 운영하는 밝음한의원도 운영 원칙이 다른 한의원과는 다르다. 변상훈 사무국장에 따르면, 다른 한의원은 약을 한 제 단위로 조제하는데 밝음한의원은 반 제 단위로 조제한다는 것. 약의 효능을 봐가면서 다른 약으로 바꾸기 용이하고, 환자의 부담도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변상훈 사무국장은 “한의사 선생님이 ‘체질에 맞지 않으니 보약을 먹지 마라,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리니, 환자분들이 ‘보약을 말리는 한의사’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라며 웃었다.
치료뿐 아니라 예방 활동도 활발

안산의료생협은 수도권 도시에서 자리를 잡은 의료생협이다. 1999년에 지역의 시민단체, 노동계, 민중교회, 지역 신협 등이 합심해 의료생협을 준비했다. 2000년 4월 창립해 그해 7월 안산시 월피동에 의원과 한의원을 개원했다. 초창기 300가구로 시작했지만, 의료생협이 왜 필요하고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지역에 알려나가면서 조합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현재, 조합원은 대략 5300가구. 전국 의료생협 가운데 조합원 수가 가장 많다. 사업도 크게 확장했다. 새안산의원, 새안산한의원과 함께 건강검진센터, 우리생협치과, 재가장기요양센터, 가정간호사업소, 꿈꾸는집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의사 2명, 한의사 2명, 치과의사 2명이 진료를 한다. 한 달에 안산의료생협을 이용하는 사람을 헤아려보면 의원은 1500여 명, 한의원은 1100여 명, 치과는 700~800명이다. 지난해에는 27억6000여 만원 매출에 당기순이익 6500만원을 기록했다. 우수 사회적 기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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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원주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우리동네의원. 6분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의료생협은 질병 치료 기능뿐만 아니라 보건·예방 활동에도 중점을 둔다. ‘주치의’로서 조합원의 건강관리 활동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 병원에서는 한 해 2000~2500명이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상 소견이 나오면 건강실천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최소한의 실비만을 받고 6주에서 8주 코스의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한다. 일종의 ‘건강 주치의’ 프로그램이다. 한상운 안산의료생협 경영지원실장은 “조합원들이 병원의 주인인 만큼 병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만족도가 높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의원, 한의원, 치과, 요양원 등을 운영하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안산의료생협은 한때 어려운 고비를 겪기도 했다. 적자로 차입 경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2008년 조합원이 2000여 가구를 넘어가면서 안정적 경영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2009년도에는 안산 지역 4개 협동조합이 연대해 치과를 개원하기도 했다. 지역의 화랑신협이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아이쿱안산생협, 두레생협, 안산의료생협이 ‘협동해’ 치과 병원을 세운 것이다. 경창수 안산의료생협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조합원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 네트워크의 힘이 나타난 것이다. 치과 병원은 이전보다 훨씬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라고 말했다.

다시 6월6일 마포의료생협 워크숍으로 돌아가보자. 이날 회의에서는 개원준비위원회, 교육위원회, 홍보위원회, 건강마을만들기위원회, 의료네트워크위원회 등 앞으로 실무를 담당할 위원회를 구성했다. 처음 시작하는 의료생협에서 가장 꼼꼼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개원’이다. 초창기 의료생협은 ‘뜻이 맞는 의료진’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어떤 의사와 어떤 위치에 병원을 여는지가 중요하다. 이날 자문자로 참가한 최봉섭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상임이사는 “소심 불패. 돌다리도 두드리고 점검하고 간다”라고 말했다. 의료기관 개원가는 ‘정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복마전이다. 서울에서 병원을 개원하는 데 3억~4억원이 필요하고, 의료기관을 여는 순간 매일매일 비용이 지출된다. 경제적으로 고전하기 십상이다. 한 의료생협은 개원했다가 경영난으로 폐원하기도 했다. 최 이사는 “경영 문제를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영 문제에만 빠지게 되면 돈 얘기만 하게 돼 조합의 본래 목적과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라고 말했다.

자립 경영의 방안을 고민하고, 의료생협의 목표를 공유하고, 의료생협을 만드는 과정을 조합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훈련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조합원의 활발한 참여가 ‘경영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최봉섭 이사의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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