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포의료생협은

[세계일보] [갈길 먼 환자 알권리] (4회) 권리 찾기에 나선 환자들

서울 지하철 6호선 망원역 인근에 개원한 지 보름 남짓 된 마포의료생활협동조합 의원은 겉으로는 여느 동네의원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진료실에 들어가 주치의를 만난 순간 뭔가 범상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 전재우(43)씨는 환자들에게 자꾸 질문을 던지면서 진료 과정에 적극 참여토록 한다. 건강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고, 환자의 노력과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얘기해준다.

마포의료생협 등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된 전국 18곳의 의료생협은 환자 권리찾기 운동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의료기관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고, 그곳에 고용된 의료진과 건강해지는 방법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댄다. 의료생협의 ‘환자권리장전’에는 “환자는 이윤 추구나 지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을 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전씨는 “다른 병원에서보다 친절·정확·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의사 한 사람이 모든 걸 아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해줄 부분도 한계가 있기에 늘 같이 상의해 결정하자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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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망원동에 있는 마포의료생협의원에서 의사 전재우씨(오른쪽)가 건강검진에 관한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 김수미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전씨는 이날 대장내시경이 김씨에게 필요한 검사인가에 대해 설명했고, 김씨는 이 설명을 듣고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재문 기자

건강검진 전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 김수미(32·서울 홍은동)씨는 “건강검진 할 때 기본적으로 정해진 항목 외에 나에게 어떤 검사가 더 필요한지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주치의와 가족력 등을 상의한 끝에 대장내시경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합원인 박은주(37·서울 망원동)씨는 “지금까지 이용한 병원에서는 그때그때 증상에 대한 처방만 해주지, 치료하면 어떤 반응이 나오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치료법 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앞으로의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보니 이 병원 저 병원 다니게 되고, 마음이 불안해져 결국 인터넷 등에서 온갖 정보수집해 자의적으로 대처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잘 설명해주면 여기서 꾸준히 가족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평등하지 않은 의사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던 환자들이 이같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서고 있다.
선진국처럼 환자권리를 독립적인 법에 명시한 환자권리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도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와 환자단체연합회 등 환자단체는 이 문제를 국회와 논의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6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때에는 환자의 진료와 관계되는 중요한 사항을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게 미리 설명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사와의 갈등 상황에서 소비자원이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적극적으로 구제를 요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 1∼8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의료분쟁 조정 건수는 총 501건으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앞에서 병원을 이용할 때 자신의 권리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담은 유인물을 나눠주며 환자권리찾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제공

환자단체연합회와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 환자단체는 피해사례를 공유하고 대책을 함께 논의하는 피해자 모임을 상시로 운영한다. 또한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서울시립보라매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병원 앞에서 환자권리 항목과 권리행사 시 행동요령, 피해를 받았을 때 처리방법 등을 안내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며 환자권리 찾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자권리 찾기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사업단의 박용덕 정책위원은 “우리는 아직 ‘환자권리’라는 기전 자체가 없어 여전히 권리를 주장하는 환자들은 ‘진상’ 취급당하는 분위기”라면서 “고객 유치나 서비스 차원에서 환자를 대하지 권리·의무관계로 생각하지 않는 의료기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3-12-13 / 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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